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본격 사회 고발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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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포스터

가해자의 시선으로 보는 학교폭력, 본격 사회 고발극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일본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한국에서도 공연이 되면서 반향이 있던 작품이다. 물론 영화는 원작과 달리 한국적으로 서사를 풀어냈기에 차별점이 존재한다. 여기에 영화를 제작한 '김지훈'감독 특유의 연출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주로 재난영화를 제작했던 그는 이 영화 또한 재난영화라고 말한다. 다만 육체적인 재난이 아니라 영혼에 닥치는 재난이라고 설명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자그마치 5년 전인 2017년에 촬영이 완료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다양한 이유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2022년이 되어서야 개봉할 수 있었다. 그 5년 동안 이미 한국에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하는 영화 및 드라마들이 많아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학교폭력이 흔히 일어나는 사회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흔한 소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과 상관없이 실제 학교폭력은 여전히 극성이다. 이전에도 지금도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고 있고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이야기되어 끊임없이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봉 시점이 늦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잊을만할 때쯤 보여주면서 각성효과를 내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다른 영화들과 분명하게 다른 점이 존재한다. 바로 피해자의 시선이 아닌 가해자 그리고 그 가해자의 보호자 시선에서 전개된다는 점이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학교폭력이 얼마나 괴로운지,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는 이미 모두 안다. 알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는 분명한 문제가 있다. 이 작품은 그 부분을 꼬집어 보여준다. 가해자들이 행하는 폭행의 형태, 가해자 및 가해자 부모의 적반하장 태도, 학교와 교사의 허술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대응방식 등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제대로 꼬집었다.

자식이 괴물이 되면, 부모는 악마가 된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 배경도 화려한 소위 잘 사는 학생들이 다니는 명문학교 '한음 국제중학교' 그리고 그곳에 사회배려자로 입학해 다니던 '김건우'. 어느 날 건우는 강에 뛰어들어 스스로 세상을 저버리려 시도한다. 다행히도 강에서 배를 타던 사람에게 발견되어 죽지는 않았지만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건우의 반에 임시로 담임을 맡고 있는 기간제 교사 '송정욱'. 그녀는 건우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그 안에는 건우가 자신을 괴롭힌 학생 4명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정욱은 편지를 교장에게 전달하고, 교장은 편지 속 이름이 적힌 아이들의 보호자를 학교로 소환한다. 편지 속 적힌 4명은 '도윤재', '박규범', '정이든', '강한결'. 도윤재의 아버지 도지열은 병원장, 박규범의 할아버지는 전직 경찰청장, 정이든의 아버지는 같은 학교 학생주임, 강한결의 아버지 강호창은 대형 로펌 변호사다. 이렇게 모인 4명의 학부모는 아들의 학교폭력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사건을 재력과 권력으로 덮으려 하고, 결국 부모들의 지나친 개입으로 사건의 수사는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결국 사건이 이렇게 덮여가던 그때, 의식불명이었던 건우가 사망하게 되면서 사건이 커진다. 학생의 죽음으로 인해 정욱에게 전해졌던 편지는 본격적으로 유서가 되어버렸고, 사건은 집단 괴롭힘에서 살인사건이 되는 상황으로 번졌다. 4명의 부모들은 커진 사건을 어떻게든 은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애쓴다. 보다 못한 담임 정욱은 양심선언과 함께 경찰에 정식 수사의뢰를 요청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렇게 선택한 방법은 사건을 인터넷에 퍼뜨리는 것. 건우의 이야기가 언론에 퍼지면서 지지부진하게만 흘러갔던 사건은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과연 진실을 밝히려는 정욱과, 은폐하려는 부모들 중 누가 이기게 될까?

영화보다 더 지독한 현실

가해자의 입장에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일까? 보는 내내 불편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정말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오죽하면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이 영화는 저혈압 치료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 화가 나는 건 영화보다 현실이 훨씬 지독하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는 편지를 전달받은 교장이 학부모를 소환하고, 담임은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그런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학생들 개인 간의 다툼쯤으로 치부해버리고 학교의 명성이 더럽혀진다며 쉬쉬하기에 바쁘다. 괴롭힘을 고발하는 순간 귀찮아진다며, 얽히기 싫다며 선생님들은 그저 피해학생을 어르고 달래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한 경우가 훨씬 많다. 결국 가해자는 평생 반성은커녕 잘 먹고, 잘살고 피해자만 트라우마에 갇혀 암흑적인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게 지극히 현실이다. 학교폭력에는 커다란 이유가 없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니 해결책을 마련하는 방안은 더 어렵다. 결국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곤 한다. 영화를 제작한 김지훈 감독이 인터뷰 중에 한 말이 있다. 학교폭력에는 이유가 없지만, 가해학생이 그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뉘앙스의 이야기.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어떤 이유로도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서사를 부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을 떠나서 영화에서는 이 지독한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현실보다는 덜하지만 충분히 비열하고, 지저분하고, 찝찝하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본다면 다시금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을 정도로 현실을 담았다.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없는 영화이니 이런 부분이 불편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가 불편하다면 관람을 추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류의 영화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에 따라 사회적 관심을 더 불러일으켜서 가해자에게는 엄벌이 내려질 수 있는 환경, 피해자는 두 발 뻗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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