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실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영화 <한공주>는 '이수진'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2014년 개봉했다. 영화는 2004년에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축소해서 담았다. 실제 사건은 경상남도 밀양시에서 발생했으며 남고생 44명이 온라인 채팅으로 울산 지역의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을 유인해 성폭행한 사건이다. 쇠파이프와 같은 무기를 이용하여 폭행한 후 저항불능 상태에서 집단성폭행을 시작했고, 이는 자그마치 1년 이상 지속됐다. 실제 성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인터넷에 유포하기도 했으며, 금품 갈취까지 이뤄졌던 잔혹한 범죄였다. 한편, 사건이 알려지고 수사가 시작되자, 가해자 가족들은 되려 피해자인 여중생을 협박했고, 경찰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 수사과정 또한 문제가 많았다. 피해자의 신원 보호는커녕 언론에 관련 보도자료를 공개했다. 당시 모 경찰은 피해자에게 "네가 먼저 꼬리 친 건 아니냐"는 망언을 하기도 했다. 더불어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조사실에서 마주 보게 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문제들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서울로 피신했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피해자는 편히 살 수 없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과 정서불안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전학을 가려했지만 성폭행 피해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가해자 부모들은 찾아와 교실 앞에서 기다리며 합의서 작성을 요구했다. 결국 피해자는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성인이 된 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은 이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사건은 공범을 포함해 총 115명의 가해학생이 있었으나 처벌받은 사람은 고작 30명. 그마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던 사건이다.
외국 각종 영화제를 휩쓴 독립영화
영화는 누적 관객수 22만 명을 넘어섰다. 독립영화 치고 굉장히 많은 편이다. 영화는 엄청난 투자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아주 유명한 영화배우를 캐스팅해 제작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국내를 비롯한 해외의 영화제들을 모두 섭렵했다. 제18회 부산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총 14개의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이 작품을 본 후, 내일 당장 이 감독의 또 다른 영화를 보고 싶다는 극찬을 할 정도로 영화는 좋은 평을 받았다. 영화를 제작한 '이수진'감독은 영화의 소재보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소녀의 성장담과, 그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단순한 사건을 그리지 않고, 주인공과 그 주변인들의 감정선을 그렸다. 이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 한 다른 사회 고발극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영화는 과연 이 사건을 어떻게 그렸나?
영화는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전개된다. 주인공 '한공주'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 그리고 이전 학교 담임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의 어머니 집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조용한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공주'는 평범한 삶을 사는 듯하지만, 불현듯 트라우마였던 과거가 떠오르며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그리고 공주에게 다가온 친구'은희'와 그녀의 친구들. 하지만 여전히 공주는 그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공주가 흥얼거린 노래를 몰래 들었던 친구들은 소질이 있다며 데뷔해도 좋겠다며 응원하지만 공주는 거절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녹음한 공주의 노래를 몰래 기획사에 보내게 되고, 공주가 차갑게 대해도 계속 다가오는 '은희'에게 마음을 열어 두 사람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오디션 영상까지 찍을 정도로 가까워졌지만, 친구들이 공주의 팬카페를 개설했다는 사실을 알고 공주는 다시금 마음의 문을 닫는다. 한편, 이전 학교 학부모들이 공주의 학교로 찾아오는데, 과연 공주는 이 위기를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피해자가 오롯이 견뎌내야만 하는 사회는 대체 누가 만들었나
영화를 보면 분노를 감출 길이 없다. 사건과 가해자는 금세 잊힌다. 결국 피해자만 각인되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는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그대로 보인다. 혼자 버텨야 하고, 숨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피해자의 심경을 가늠할 수조차 없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단순한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영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녀를 보호하지 않는 부모. 그리고 오히려 당당하고 뻔뻔한 가해자들과 그들의 부모. 피해자를 탓하기 바쁜 경찰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 더불어 피해자임에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견뎌내는 주인공 한공주까지. 어떻게 보면 '주인공 편은 하나도 없고, 전부 비상식적인 주변 인물들 뿐이라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암담하고 불편하다. 가해자를 원망하고, 법을 원망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피해자들은 꾸역꾸역 버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영화 개봉 후 8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는 저때와 다른 게 없다. 어떠한 피해에 노출된 피해자에게 사람들은 피해를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피해자를 비난한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뻔뻔하고, 그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다. 제대로 된 가치관을 성립시켜줘야 할 부모가 그러지를 못하니 범죄는 예견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늘 말한다. 사회적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기사의 헤드라인에는 피해자가 노출되고, 사람들에게는 피해자가 각인되는 일들도 수두룩하다. 이것은 성별을 막론한다. 남성이 피해자든, 여성이 피해자든 그 어떤 구실을 갖다 붙여 서라도 피해자를 탓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피해자 편을 들고 그들을 감싸줬던 사람들이 이후에 달라지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잊고 살라며 충고를 가장한 독설도 일삼는다. 영화를 제작한 이수진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 때 '과연 내가 저 상황이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이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답은 여전히 내리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고 방법을 찾았으면 했다고.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고, 사건에 분노하고 사회에 분노했지만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물론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하고, 마음이 아팠지만 이런 영화는 더 많이 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회에 많은 물음표를 던져서 좋은 해결방안이 생성되었으면 좋겠고 더 나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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